공간을 세우는 눈 — ‘올바른 구축’의 원근법
앞의 포스팅에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알베르티의 시각 피라미드와 그리드를 통해 대상의 곽을 그리는 방법이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르상스 회화의 특성은 객관적 비례에 따라 그저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의 가장 큰 변화는 대상만이 아니라 그것을 감싸는 공간 전체를 재현하는 데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의 화폭은 2차원적 구성의 평면이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화폭은 3차원적 공간의 환영이었습니다. 알베르티는 화폭을 '열린 창'으로 상상하라고 말했습니다.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은 원근법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들 또한 경험을 통해 사물이 떨어져 있을수록 작아 보인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리와 크기의 비례에 대한 이론적 이해가 없었기에 화폭에 원근감을 주기 위해서 독특한 방법을 사용했습니다. 즉, 화폭의 아래에 횡선을 긋고 그것을 3등분한 다음, 그 위로 두 칸에 해당하는 거리에 또 다른 횡선을 긋고, 그것을 다시 3등분하여 두 칸을 위로 올리기를 반복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어느 정도 화면에 원근감이 생깁니다.
하지만 이 경우 맨 위의 수평선이 화가 시점의 높이와 일치하지 않게 됩니다. 반면, 공간에 배치될 인물은 화가의 눈높이에 따라 그려질 것이므로, 인물과 배경의 시점이 달라지는 문제가 생깁니다. 그렇게 그림을 그릴 경우, 아마도 아이들의 스티커 북처럼 인물과 공간이 따로 노는 듯한 느낌을 줄 것입니다. 게다가 횡선들 사이의 거리가 단축되는 비율도 정확하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그래서 알베르티는 자신이 '올바른 구축'이라 부른 새로운 원근법을 소개합니다.
실은 '올바른 구축'에 대한 알베르티의 설명은 그다지 명확하지 않아 크게 세 가지 상이한 해석이 존재합니다. 그중에서 파노프스키의 설명에 따르면, 올바른 구축은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만들어집니다. 먼저 화면에서 시각 피라미드의 정점에 대응하는 중심점을 정하고, 그로부터 같은 간격으로 늘어선 밑변의 점들(a, b, c, d, e, f)까지 직선을 연결합니다. 여기에 횡선을 그어야 하는데, 문제는 그 횡선들의 간격을 어떤 비율로 단축해 나가느냐 하는 것입니다.

동일한 길이의 바닥 타일(g, h, i, j, k, l)이 화면(=시각 피라미드의 횡단면) 위에서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횡선(v, w, x, y, z)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그렇게 하여 아래쪽 그림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죠. 구축이 올바로 되었는지 알아보기 위해, 알베르티는 사각형의 대각선들을 잇는 직선을 하나 그어보라고 권합니다. 그것들이 하나의 직선으로 꿰어진다면 올바르게 구축된 것입니다.
가시적 세계의 재현 — 회화에 깃든 ‘신적인 힘’
중세 예술이 초월적 세계를 가시화하려 했다면, 르네상스 '화가의 임무'는 가시적 세계를 재현하는 데 있었습니다. 알베르티에 따르면, 화가는 '평면적으로 관찰한 어떤 물체를 화면이나 벽면 위에 선으로 그리고 색을 입혀야' 하는데, 그렇게 그려진 물체는 '얼마간의 거리를 두고 적당한 시점에서 보았을 때 마치 부조처럼 돌출하여 실물을 방불케' 해야 합니다. 이런 묘사에는 놀라운 힘이 깃들어 있습니다.
"회화는 멀리 떨어져 있어서 볼 수 없는 사람들을 우리 눈앞에 데려다주고,
이미 몇백 년 전에 세상을 떠난 사람들일지라도
마치 살아 있는 사람의 모습처럼 생생하게 보여주는 신적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원격현전(tele-presence)의 능력을 알베르티는 '신적인 힘'이라고 부릅니다. 이 힘이 무서운 사람도 더러 있었던 모양입니다. 가령 알렉산드로스 대왕의 장수인 카산드로스는 대왕의 초상 앞에서 온몸을 사시나무처럼 떨었고, 자신의 외모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케다모니아의 아게실라오스는 후세인들이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도록 제 얼굴을 그리거나 새기지 못하게 했습니다.
여기서 알 수 있는 것은 르네상스의 화가들이 회화의 본질을 환영 효과에서 찾았다는 점입니다. 이는 회화의 기원에 대한 그들의 관념에서도 드러납니다. 알베르티는 '꽃으로 변신한 것으로 알려진 그 유명한 나르키소스가 실은 회화를 발견한 장본인'이라고 말합나다.

"연못의 수면 위에 비친 자신의 그림자를 예술의 힘으로 끌어안으려고 하 것이야말로 바로 회화가 아니겠습니까?"
알베르티는 퀸틸리아누스를 인용해 또 다른 전설을 소개합니다. 고대의 화가들이 햇빛이 만드는 그림자의 윤곽선을 그리곤 했는데, 그게 회화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르네상스 화가들이 회화의 본질은 무엇보다 '윤곽'에서 찾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윤곽선이 제대로 된 경우, 다시 말해 소묘가 올바르게 되었다면,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썩 잘 된 그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윤곽선 그리기에 제일 많이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물에 비친 영상이나 햇빛으로 생긴 그림자를 모범으로 삼는 데서 볼 수 있듯이, 르네상스 회화는 형의 제작에 '객관적 비례'를 적용했습니다. 기하학적 프레임에서 출발하는 중세의 제작적 비례로는 실물을 방불케 하는 사실적 묘사를 하는 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화가들은 생생한 환영 효과를 위해 다시 고대의 객관적 비례로 돌아갑니다.
빛을 그리는 물감 — 세속적 색채의 탄생
"소묘가 올바르게 되었다면, 그것 하나만 가지고도 썩 잘 된 그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회화의 아름다움은 결국 윤곽(형태)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미의 관념은 중세의 실질적 정의에서 고대의 형식적 정의로 돌아갑니다. 중세의 장인들은 찬란한 빛과 색의 효과를 위해 값비싼 재료를 사용했습니다. 르네상스에 들어와 생긴 가장 큰 변화 가운데 하나는 재료 미학의 포기였습니다.
"상아나 은을 두고 백색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눈이나 백조의 순백색에 비하면 어쩐지 우중충해 보입니다.
그러므로 (어두운 것 옆에서) 밝아 보이고 (밝은 것 옆에서) 어두워 보이는 사물들의 성질과 유사하게
흑과 백의 적절한 배합을 구사한다면, 눈부시게 빛나는 광채라도 그리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중세의 장인들은 빛의 효과를 내는 데 실제로 빛을 사용했지만, 알베르티는 화가들에게 빛의 효과를 연출하는 데 물감을 사용하라고 권했습니다. 훌륭한 화가라면 금을 묘사할 때도 실제의 금이 아니라 물감만 사용해야 한다고 말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데 금을 많이 사용하면 영광스러운 작품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천만의 말씀입니다. 베르길리우스가 서술한 디도를 그린다고 칩시다.
황금 화살통을 걸치고, 금실로 짠 머리띠로 금발의 머리카락을 질끈 묶고, 순금 허리띠를 진자색 옷 위에 두르고,
황금으로 장식된 말고삐에, 모든 것이 황금으로 덮여 있다고 할지라도, 나는 진짜 금을 발라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알베르티는 '색을 사용해서 황금의 광채를 모방하는 화가들에게' 찬사를 보냈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금의 사용을 금지하는 이유입니다.
"금박으로 바탕을 칠한 그림들이 그래도 여전히 있습니다.
그런 그림들에서는 밝게 처리되어야 할 부분이 그늘져 보이고,
어두워야 좋을 부분들이 환하게 번쩍거리는 것을 봅니다."
한마디로 그림에 금을 사용하게 되면 실제로 눈에 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보이게 된다는 이야기입니다. 중세의 예술은 번쩍이는 금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초월적 세계의 빛을 상징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회화의 임무가 가시적 세계의 재현으로 바뀐 이상, 초월적 빛을 상징하던 금이 화면에 남을 이유도 사라집니다. 물감으로 연출한 색채와 광휘는 초월이 아니라 세속에 속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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