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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서양미술사

실재와 환상 — 중세의 눈으로 본 세계, 그리고 그 너머

by artzip603 2025. 10. 13.

실재와 환상의 경계

그렇다면 과연 중세의 장인들이 가시적 세계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말하는 신비주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아는 한, 중세의 장인들은 지적 교양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육체노동을 하는 기능공 정로 여겨졌던 그들은 고상한 정신노동을 담당하는 신학자들의 주문과 지시에 따라 물건을 제작하여 납품했을 뿐입니다. 그 때문에 작품의 재료가 보여주는 색과 빛 감각적 효과에는 매료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너머의 초감각적 신학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중세의 장인들이 본인의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곳에서는 이들에게 폭넓은 상상력의 자유가 허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교회의 공식적 교리와 구별되는 천사와 악마를 믿기에 유니콘과 드래곤의 실재 믿었던 중세의 민중적 상상력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처럼 실재와 상상 사이에 높은 벽을 쌓지 않았기에 그들의 생물도감에는 실재하는 동물과 상상 속의 동물이 뒤섞여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 베르나르가 므와삭 수도원 기둥에 기괴한 생물들을 새겨 넣은 것을 비난한 것을 알고 있지만, 신학자들의 불평이 장인들의 환상의 자유까지 억압하지는 못했습니다. 초현실주의의 선구자라고 알려진 히에로니무스 보슈의 환상적 세계는 사실 몇백년 앞선 현상이 아니라, 몇백년 뒤늦은 로마네스크의 전통입니다. 공식적 영역은 기독교라는 종교적 환상이, 비공식적 영역은 민중적 상상력이 낳은 세속적 환상이 지배했던 시대, 중세는 판타지의 시대였습니다. 그때 현실은 환상과 뒤섞여 있었습니다.

실재란 무엇인가 - 중세의 세계와 현대 예술의 평행선

어떤 의미에서 '실재(Reality)'란 우리에게 눈에 보이는 세계가 유일한 실재지만, 중세에 그것은 유일한 실재도, 중요한 실재도 아니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실재란 어쩌면 '합의된 세계'라고 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중세에 '합의된' 진정한 실재는 감각 너머에 존재하는 초월적인 세계였기에, 가시적 세계를 보이는 대로 재현하는 것은 별 의미가 없었습니다. 이 현대 예술이 처한 상황과 닮았기도 합니다. 카메라의 등장 이후 현대 예술에서도 재현은 의미를 잃었기 때문입니다. 미술사가 아순토는 여기서 중세 예술과 현대 예술 사이에 평행선을 보았습니다. 

실제로 둘은 닮았습니다. 가령 중세 예술이 가시적인 것을 넘어 비가시적 세계를 드러내려 했다면, 현대 회화 역시 '가시적인 것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화'(파울 클레)하려 합니다. 중세 예술이 가장 중요한 의미를 형식(빛과 색)에 담아 전달했다면, 현대 예술에서도 '내용은 형식 속에 침전'(아도르노)이 됩니다. 르네상스 이후 고전 예술의 창작 과정이 '내용+형식'이었다면, 고전 예술 이전의 중세 예술과 고전 예술 이후의 현대 예술에서는 창작이 '재료+처리'의 과정으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중세의 색채 효과는 현대의 표현주의를 닮았고, 중세 디자인의 기하학적 프레임은 현대의 추상에 가깝습니다. 형과 색에 상징적 의미를 결부시키는 것은 칸딘스키를 닮았고, 한 공간에 이미지와 텍스트를 병치시키는 것은 파울 클레를 닮았습니다. 사물이자 기호였던 중세의 공예품은 다다의 레디메이드를 연상시켰고, 아직 원근법을 몰랐던 중세의 회는 다(多)시점의 큐비즘을 실천했습니다. 또 장인들의 민중적 상상력은 현대의 초현실주의처럼 실재와 상사의 경계를 자유로이 넘나들었습니다.

중세의 가을 - 판타지의 여름이 저물다

"이 세상에 가시적인 방법으로 행해지는 모든 것은 악마의 일일 수도 있다"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입니다.

중세인들이 가시적 세계의 재현에 관심을 갖지 않았던 것은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눈은 감각적 세계 넘어의 초월적 의미가 있었습니다.

"신에게서 의미 없는 것이란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까 중세의 장인은 모든 피조물 속에 감추어진 상징적 의미를 찾아 드러내려 했습니다. 하지만 중세가 저물어가면서 현실에 대한 관념도 바뀌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이렇게 일갈했습니다.

"이 우의적 연구들은 할 일 없는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 여러분은 내가 아무 피조물에 대해서나 알레고리의 유희를 해대지 못하리라 생각하는가? 알레고리를 못 할 만큼 재치 없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요한 하위징아, 《중세의 가을》, 260쪽

이 종교 개혁가는 '실재'에 대해 중세의 신학자들과 완전히 다른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세에 세계는 두 겹(내세+현세)으로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하지만 루터는 더 이상 알레고리로 지시되는 초월적 층위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세계는 한 겹으로 돌아온다. 사람들은 서서히 감각적인 현세가 유일한 세계라 믿게 되는 것입니다. 이에 따라 사물을 초월적 의미와 연결 시켰던 중세의 상징적 사유가 물러나고, 그 자리에 사물과 사물의 현실적 연관을 찾는 근대의 인과적 사유가 들어서게 됩니다.

초월적 층위가 사라지자, 그것을 상징하던 빛나는 재료도 필요 없게 됩니다. 르네상스의 저자 알베르티는 화가들에게 색과 빛의 효과를 내는데 값비싼 재료 대신에 물감을 사용하라고 권했습니다. 이로써 사물과 기호는 분리된느 것이지요. 이미지와 텍스트 또한 분리되어, 화폭에서 쫓겨난 텍스트는 밖으로 나가 제목이 됩니다. 실재와 환상도 분리됩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미 장인들에게 "신이 창조하신 질서대로 그려라"라고 요구한 바 있습니다. 판타지의 여름은 이렇게 저물어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