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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 회화론: 신에서 인간으로, 그리고 이야기로 예술가, 또 하나의 신이 되다물감으로 빛과 금의 효과를 낼 때, 화폭의 내부는 철저히 시각적으로 가상이 됩니다. 그림 속의 빛과 금은 진짜가 아니라 물감에 불과한 것이죠. 이로 인해서 실재와 가상, 사물과 기호는 철저히 분리됩니다. 하지만 알베르티가 금의 사용을 무조건 금했던 것은 아닙니다. "그림을 장식하는 (액자들 같은) 수공에 있어서는,예컨대 원주, 프로필이 새겨진 받침돌, 기둥머리, 파사드, 모티프 따위로 장식하는 데는,설령 순금을 덩어리째 넣어도 를 비난할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완벽한 역사화는 진귀한 보석들을 주렁주렁 달아서치장할 만한 충분한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화폭의 안은 철저히 가상이어야 하기에, 금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화폭 밖으로 나가 장식이 되어야 .. 2025. 10. 14.
알베르티의 ‘올바른 구축’과 르네상스 회화의 새로운 시선 공간을 세우는 눈 — ‘올바른 구축’의 원근법앞의 포스팅에서 설명해 드린 바와 같이 알베르티의 시각 피라미드와 그리드를 통해 대상의 곽을 그리는 방법이 완성됐습니다. 하지만 르상스 회화의 특성은 객관적 비례에 따라 그저 대상을 눈에 보이는 대로 묘사하는 데 그치지 않았습니다. 르네상스의 가장 큰 변화는 대상만이 아니라 그것을 감싸는 공간 전체를 재현하는 데 있었습니다. 중세 시대의 화폭은 2차원적 구성의 평면이었지만, 르네상스 시대에 화폭은 3차원적 공간의 환영이었습니다. 알베르티는 화폭을 '열린 창'으로 상상하라고 말했습니다. 초기 르네상스 화가들은 원근법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없었습니다. 그들 또한 경험을 통해 사물이 떨어져 있을수록 작아 보인다는 것을 알았지만, 거리와 크기의 비례에 대한 이론적 이.. 2025. 10. 13.
르네상스의 눈: 알베르티와 시각 피라미드 르네상스 시대에 들어오면서 지적 교양을 갖춘 화가들이 이제 자신들의 작업에 이론적 표현을 주려고 하기 시작합니다. 알베르티(Leon Battista Alberti, 1404~1472)의 《회화론》은 이 새로운 정신적 분위기를 보여주는 예입니다. 창작은 뒷받침하려는 화가들의 노력에 힘입어 예술은 비로소 정신노동으로 인정받습니다. 마침내 예술이 자유학예의 반열에 오르게 된 것이죠.기능공에 불과했던 장인들이 어느새 교양인으로 부상한 것입니다. 시인들은 이 사태가 영 머뜩았던 모양이었는지 회화를 낮잡아 부르기 위해 즐겨 심니데스를 인용했습니다. 이 고대의 저자는 시를 '말하는 회화', 회화를 '말 없는 시'라고 부른 바 있습니다. 한마디로 말을 못하는 회화가 시를 따라올 수는 없다는 말인 것이죠. 그러자 발끈한.. 2025. 10. 13.
실재와 환상 — 중세의 눈으로 본 세계, 그리고 그 너머 실재와 환상의 경계그렇다면 과연 중세의 장인들이 가시적 세계 너머의 초월적 세계를 말하는 신비주의 철학을 이해할 수 있었을까? 우리가 아는 한, 중세의 장인들은 지적 교양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습니다. 육체노동을 하는 기능공 정로 여겨졌던 그들은 고상한 정신노동을 담당하는 신학자들의 주문과 지시에 따라 물건을 제작하여 납품했을 뿐입니다. 그 때문에 작품의 재료가 보여주는 색과 빛 감각적 효과에는 매료되었을지 모르지만, 그 너머의 초감각적 신학까지는 이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그렇다고 중세의 장인들이 본인의 창의력을 발휘할 여지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교회에서 관심을 갖지 않는 곳에서는 이들에게 폭넓은 상상력의 자유가 허용되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우리는 교회의 공식적 교리와 구별되는 천사와 악.. 2025. 10. 13.
상징과 알레고리의 세계 — 중세 예술이 말하는 ‘보이는 것 너머의 의미’ 알레고리중세인은 감각적 재료로 초감각적 세계를 상징하려 했습니다. 재료의 물질성이 초월적 의미를 말합니다. 이 역시 일종의 '알레고리(Allegory)'라 할 수 있습니다. 알레고리란 원래 '다른 것을 말하다'라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중세인은 우리보다 자연을 한 층 더 깊숙이 보았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세계의 모든 것 속에 보이지 않는 의미가 감추어져 있다고 믿었고, 그래서 눈으로 보는 색채 하나하나에 모두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흰색, 붉은색, 녹색은 자비롭지만, 검은색과 노란색은 속죄와 슬픔을 의미한다. 흰색은 빛, 영원, 순결, 순수의 상징이었다. · · · · · · · 흰색은 순수, 붉은색은 피, 사나움, 잔인함인 것이다." -움베르토 에코 《중세의 미와 예술》,113쪽 색깔에만 상징주의가.. 2025. 10. 12.
형(形)에서 빛(光)으로: 플로티노스에서 시작된 중세의 미학 오늘은 서양 미학사에서 매우 흥미로운 전환점을 만든 플로티노스(Plotinos) 와 그의 사유, 그리고 그것이 중세 건축과 예술에 미친 영향을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고대 그리스의 ‘비례의 미학’에서 시작해, 헬레니즘 시대를 거쳐 **‘빛의 미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단순한 철학적 변화가 아니라, 예술의 본질을 뒤바꾼 거대한 흐름이었습니다.형태에서 빛깔로 - 플라티노스의 등장 고대 그리스 예술에서 미는 수학적 비례와 조화의 산물로 여겨졌습니다. 피타고라스 학파는 우주 자체를 ‘숫자의 조화’로 이해했고, 플라톤 역시 “아름다움은 비례의 완전함에서 비롯된다”고 보았습니다.이러한 사고는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의 ‘카논(canon)’으로 구체화되었습니다. 그는 인간 신체 각 부분의 이상적 비율을 수학적으로 계산.. 2025. 10. 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