객관적 비례와 제작적 비례: 이집트와 그리스 조형 예술의 대비
이집트의 조상은 그다지 실물 같은 느낌이 들지 않습니다. 제작적 비례에서 비롯된 양식화의 경향이 강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그리스의 조각은 마치 살아서 꿈틀거리는 듯 보입니다. 제작적 비례를 포기하고 철저하게 '객관적 비례'를 추구했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의 장인들은 변화의 묘사를 전부 포기 하면서 이 난점을 피해 갔지만, 그리스 예술가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장인들이 회피했던 것을 자신들의 예술적 과제로 적극적으로 끌어안으려 했습니다.
카논의 활용 방식과 조형 감각의 변화
그리스의 예술가들도 물론 '카논'을 사용했습니다. 문헌을 통해 우리는 조각가 폴리클레이토스가 카논을 제정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논이 있다고해서 곧바로 인체 묘사가 완성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체의 길이는 모델의 자세와 시선의 각도,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창을 든 청년'으로 불리는 <도리포로스>를 관찰해 봅시다. 이집트의 조각이 좌우로 기계적인 대칭을 이룬다면, 여기서는 팔과 다리의 이완과 수축이 위아래 X자로 교차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콘트라포스토(Contraposto)'라 불리는 이 자세로 조각은 무기물의 딱딱함을 벗어나 살아 움직이는 유기체의 특성을 갖게 됩니다. 사내의 축 늘어진 오른팔과 창을 거머쥔 왼팔은 당연히 길이가 다를 것입니다. 체중을 받아 근육이 수축된 다리와 힘을 빼 이완된 다리 또한 첫눈에 봐도 길이가 달라 보입니다. <쪼그리고 앉은 비너스>를 관찰해 봅시다. 방금 목욕을 마친 사람처럼 몸을 살짝 옆으로 틀면서 일어나려는 여신의 우연한 동작을 포착해낸 것입니다. 흔히 '원반 던지는 사람'이라 불리는 <디스코볼로스>는 위태로워 보일 정도로 극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집트에서라면 이러한 기묘한 자세를 찾아보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리스의 장인들은 이렇게 스냅사진을 찍듯이 순간을 포착하기를 좋아했던 것으로 보여집니다.
자세와 시점에 따른 묘사 전략의 차이
하지만 이 우연한 자세에 따라서 그때그때 달라지는 길이를 일일이 표준화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때문에 그런 미세한 변화량을 처리해내는 것은 예술가 개개인의 능력에 맡겨졌습니다. 바라보는 시각의 차이도 신체 길이의 변화를 초래합니다. 공간의 예술인 조각이라면 별 문제가 없겠지만, 평면의 예술인 회화의 경우에는 이러한 쟁점이 투시법의 문제를 일으킵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의 적색상 암포라의 표면에 그려진 용사의 이미지를 보면, 왼발과 오른발의 길이가 크게 차이가 납니다. 측면을 향한 왼발은 원래 길이대로 그려져 있지만, 정면을 향한 오른발은 실제 길이보다 짧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신체부위를 관찰하는 각도에 따라 짧게 그리는 것을 흔히 '단축법'이라고 부릅니다. 그리스인들이 단축법을 사용한 것은 그들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보이는 대로' 그리려 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우리는 이집트인들이 왜 똑같은 상황에서 그리스인들과 달리 '정면성의 원리'를 사용했는지 거꾸로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정면성의 원리'는 신체의 단축을 피하려는 의도와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얼굴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얼굴의 인상을 결정하는 코는 납작해 보입니다.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이를 피하기 위해 얼굴에서 가장 인상적인 각도인 측면(이른바 '프로필')을 취한 것입니다. 반면 가슴은 측면에서 보면 그것의 특징인 '넓은 품'이 사라져 보입니다. 이를 피하려면 정면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편 발은 예로부터 길이의 단위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따라서 발의 특성을 드러내려면 측면을 취해야 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집트인들은 신체의 단축을 피하는 각도를 선택하는 가운데, 자연스레 정면성의 원리에 도달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유대교의 회당이나 기독교의 교회가 인간들이 회합하는 공간이라면, 그리스의 신전은 인간이 아닌 신을 위한 집, 한마디로 신상을 모셔놓은 공간이었습니다. 신전 안으로 들어간 인간은 10m가 넘는 거대한 신상과 정면으로 마주치게 됩니다. 관찰자는 자신의 키 높이에서 신상을 올려다보게 되므로, 신상의 위와 아래를 바라보는 시선의 길이가 서로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즉, 발을 향한 시선을 짧고, 머리를 향하는 시선은 길게 보이게 됩니다. 사물은 거리가 멀수록 작아 보이므로, 관찰자의 위치에서는 아무래도 신상의 머리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것입니다. 이집트인들이라면 관찰자의 위치에 따른 이런 주관적 인상의 변화에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리스인들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신상의 머리를 실제 비례보다 좀 더 크게 만들어 거리로 인해 단축되는 양을 상쇄시켰습니다. 물론 우리는 사물이 멀리 떨어져 비록 작아 보여도 실제로 작은 건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이집트인들이 조상의 제작에 이성만을 사용했다면, 그리스인들은 '감각'의 권리 또한 인정했던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만든 조상이 실물을 방불케 할 뿐 아니라 동시에 '아름다워 보이기'를 원했습니다. 이처럼 그리스는 다른 문화권에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미적 문화'를 갖고 있었습니다.
세계관과 사회 구조가 낳은 예술 양식의 차별성
그리스인들은 자신들이 만든 조상이 종교적, 정치적 기능을 발휘하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그것을 동시에 아름다워 보이도록 만들고 싶어 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의 조각가들이 자연의 모방에 그치지 않고, 신상을 조각할 때 여러 모델을 기용하여 그들의 가장 아름다운 부위만 따서 종합했음을 알고있습니다. 하지만 이상미에 대한 예술가들의 관념은 각각 다르기에, 보편적인 카논을 설정해 놓는 것만으로는 이과제를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이집트 예술에서는 카논을 입력하면 제작 과정에서 큰 변화 없이 곧바로 카논이 출력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 예술에서는 사정이 달랐습니다. 그리스의 장인들은 자세와 각도, 위치에 따른 신체의 변화를 그대로 묘사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자세와 각도, 위치에 따른 세세한 변화량을 일일이 카논으로 규정해 놓을 수는 없었습니다. 따라서 그것을 처리하는 일은 예술가 개개인의 재량에 맡겨졌습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 예술에서는 동일한 카논을 입력해도 예술가마다 출력이 달라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덕분에 그리스 예술에서는 이집트와 달리 개성화한 표현이 가능했던 것입니다. 이집트의 장인들이 무명으로 남아 있는 데 반해, 그리스의 화가나 조각가들은 오늘날까지도 그 이름이 남아있는 이유는 이미지 제작 과정에서 예술가가 발휘하는 역할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집트의 조상은 예로부터 전해진 엄격한 표준에 따라 제작된 반면, 그리스의 자상에는 어느 정도 표현의 자유가 허용됐습니다. 한마디로 이집트 조상의 제작 방식이 '기술'에 속했다면, 그리스의 그것은 '예술'에 속한 것입니다. 때문에 그리스의 장인들은 후세까지 명성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 차이는 물론 그리스인들의 세계관과 관련이 있습니다. 이집트인들의 영원불변한 내세를 지향했다면, 그리스 인들은 변화무쌍한 현세를 긍정했습니다. 우연적이고 가변적이며 개별적인 감각의 시계를 존중했기에 자세와 각도, 위치에 따른 변화를 묘사하는 것이 또한 의미를 가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한편 그리스의 정치 체제와도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이집트가 전제군주 사회로 개인 표현의 자유를 제약했다면, 민주주의를 구현했던 그리스 사회는 구성원들 개개인을 존중해 주었습니다. 이것이 예술가가 개인의 개성적 표현을 허용하는 양식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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