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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고대 이집트 예술의 비례론과 형식

by artzip603 2025. 9. 24.

비례론의 관점에서 본 예술 양식의 분석 가능성

르네상스의 자연주의 묘사가 예술의 전범으로 통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안'하는 것과 '못'하는 것은 다르다. 모든 양식 밑에 깔린 예술 의지를 객관적으로 드러낼 방법을 1892~1968)는 '비례론'을 주목한다. 비례론은 '예술적 묘사의 대상이 되는 한에서 살아 있는 생물, 특히 인간 신체의 비례관계에 관한 이론'이다. 비례는 수치로 표현되므로, 비례론의 관점에서 양식에 접근하면 예술사에 등장한 양식들의 바탕에 깔린 예술 의지를 객관적으로, 그것도 수학적 엄밀성을 가지고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노프스키는 비례를 두 가지로 구별한다. '객관적 비례'는 인체 묘사에 실제 인간의 신체 비례를 그대로 적용해 실물을 방불케 하는 자연주의적 묘사가 탄생한다. '제작적 비례'에서 묘사는 단순한 사생을 넘어 구성의 성격을 띤다. 비례가 객관적일수록 이미지는 사진에 가까워지고, 구성적일수록 디자인에 가까워진다. 두 비례는 이렇게 서로 배척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아주 가끔 이 둘이 행복하게 하나로 결합하는 경우도 있다. 예술사에서 다시 찾아보기 힘든 이 현상은 딱 한 번 고대 이집트에서 일어났다.

고대 이집트 예술의 비례 체계: 카논(Kanon)의 역할과 원리

이집트의 조상들을 보면 묘사는 디자인을 연상시킬 정도로 고도로 양식화되어 있지만, 찬찬히 뜯어보면 그 비례가 실제 인체와 얼추 맞아서 떨어진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집트의 장인들은 조상의 제작에 '카논(Kanon)'을 사용했다. 모델을 사용하지 않았는데도 조상의 비례가 실제 인체 비례와 거의 맞아떨어지는 이유는 무얼까? 그것은 제작에 사용된 카논 자체가 아득한 고대 인체에 대한 실측을 통해 제정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카논이라는 신체 비례의 표준이 있어 이집트의 장인들은 모델 없이도 조상을 제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카논이 있다고 해서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조상을 제작할 때 장인들은 일반적으로 카논만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는 세 가지 문제에 부딪힌다. 첫 번째, 동작이나 자세에 따라 신체의 길이기 달라진다는 것이다. 이는 물론 근육이 수축하거나 이완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신체의 길이는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서도 달라진다. 가령 정면에서 볼 때와 측면에서 볼 때 코의 길이는 다르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작품의 경우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길이가 달라 보인다. 가령 10m 높이의 신상을 아래서 올려다보면 머리가 상대적으로 작아 보일 것이다. 이렇게 신체의 길이는 자세와 각도, 그리고 위치에 따라 시시각각 달라지나, 이런 미세한 변화량까지 카논으로 일일이 정해놓을 수 없는 일이다.

가변성의 배제와 형식의 고정: 제작 방식의 특수성

이집트의 장인들은 이 세 가지 문제를 해결하는 특이한 방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냥 무시해 버리는 것이었다. 이집트의 조상을 보면 동작은 과격하지 않고, 자세는 거의 서 있거나 앉아있다. 부조나 벽화에는 보는 각도에 따른 신체의 단축을 피하기 위해 정면성의 원리가 사용된다. 나아가 완성된 작품이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길이가 달라 보여도 이집트의 장인들은 그것을 전혀 문제로 보지 않았다. 자세와 각도 위치에 따라 사물의 길이가 달라지는 것은 그들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인체를 묘사할 때, 이집트인들은 먼저 모눈을 그린 후 그 위에 신체 부위를 배분했다. 신체의 길이는 미리 모눈의 개수로 정해져 있었다. 신체 부위뿐만 아니라 보폭의 길이 역시 규정되어 있었다. 이렇게 모든 변화를 피하고 수치를 표준화했기에, 이집트 예술사에서는 제작 과정에 카논을 입력하면 그대로 카논이 출력되는 경향을 띤다. 그러다 보니 고대로부터 두 도시에 사는 두 명의 장인에게 한명은 상반신을, 다른 사람은 하반신을 만들고, 작업이 끝나 완성된 조각들을 한곳으로 가져와 맞추어보았더니, 상반신과 하반신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드레스드너(Albert Dresdner)dml 에 인용된 이야기다. 물론 진위를 확인할 수 없는 전설이겠지만, 그런 전설이 가능하다는 것 자체가 이미 이집트의 예술 의지가 무엇인지를 말해준다.

예술 양식의 사회적 배경: 종교, 권력, 시간성의 영향

이집트 예술은 자세와 각도 위치에 따른 신체 길이의 변화를 무시했다. 아마도 그것은 그들의 종교적 관념과 관련이 있었을 것이다. 미라와 피라미드를 만든 데서 알 수 있듯이, 이집트인들의 눈은 현세가 아니라 내세를 바라보고 있었다. 감각의 세계에서는 모든 것이 가변적이고 우연적이며 다양하다. 하지만 이집트인들의 염원은 현세를 초월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의 예술은 가변성과 우연성, 다양성을 피해 신체를 늘 불변적이고 필연적이며 확일적인 모습으로 그리려 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집트는 전제군주의 나라였다. 거기서 권력은 중아의 파라오에게 집중되고, 백성들 개개인에게 자유는 허락되지 않았다. 예술에서도 마찬가지다. 개개인에게 창작의 자유가 허용되지 않아, 장인들은 미리 주어진 보편적 규준에 따라 작업을 했다. 시간의 영원성을 지향하느 사회의 부성은 혁신을 허락하지 않았다. 장인들은 그저 수백, 또는 수천 년 동안 전해져 내려오는 오래된 제작 방식을 그대로 답습했고, 그 결과 양식의 변화는 지극히 제한된 범위 내에서만 일어날 수 있었다. 평면을을 모눈으로 모듈화하고 정해진 수치에 따라 형을 만드는 방식. 이는 어떤 면에서 규격화, 표준화된 오늘날의 공업적 생산을 닮았다. 이러한 몰개성적인 제작에서는 장인들이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다. 개인들이 기량을 보여줄 기회가 없으니, 그것을 평가해주는 '미적 문화'도 존재할 수 없었다. 이집트는 개성을 존중하거난 창의성을 평가하는 사회가 아니었다. 장인들의 사회적 지위 역시 높지 않았고, 그 찬란한 문화의 주인공들은 오늘까지도 모두 익명으로 남아있다.

 

고대 이집트 예술을 보여주는 그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