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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RT

브루넬레스키와 원근법: 평면에 3차원을 그리는 기술

by artzip603 2026. 1. 21.

피렌체 세례당 앞의 기묘한 실험

피렌체 두오모 성당 앞은 전 세계에서 온 관광객들로 늘 북적거립니다. 성당의 옆에는 조토가 지었다는 거대한 종탑이 서 있고, 그 앞쪽으로는 유명한 팔각형 모양의 세례당이 있습니다. 그 세례당의 동쪽 문은 기베르티(Lorenzo Ghiberti)가 청동으로 제작한 부조가 달려있어 흔히 '천국의 문'이라 불립니다. 항상 그렇지는 않지만, 아주 가끔은 그 세례당 앞에서 관광객들이 이상한 실험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서 어떤 역사적 실험을 재연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600년쯤 앞서서, 그러니까 1415년 8월의 어느 날 그곳에 갔더라면, 재연이 아니라 지대한 미술사적 의미를 갖는 실험에 직접 참여하여 실연할 영광을 얻었을 것입니다. 그날 두오모 성당의 세례당 앞에는 한 사내가 서 있었습니다. 사내는 세례당을 마주 보고 선 채 한 손에는 나무 패널을, 다른 한 손에는 거울을 들고 이상한 실험에 열중하고 있었습니다. 그곳을 지나던 사람들은 아마도 이 사내가 하는 실험을 호기심 어린 눈으로 지켜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사내는 오른손에 든 패널을 바짝 얼굴 앞에 가져다 댔고, 왼손에 든 거울을 앞으로 당겼다가 뒤로 밀었다 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찾아야 할 곳을 찾은 듯 앞뒤로 움직이던 거울이 한 지점에 멈추고, 잠시 후 그의 얼굴에는 만족한 듯한 묘한 미소가 흘렀습니다. 이어서 그는 제 손에 든 도구를 주위에 몰려든 구경꾼들에게 차례로 넘겨주었습니다. 호기심에 안달이 난 구경꾼들은 그가 시키는 대로 거울을 밀었다 당겼다 하다가 저마다 경탄의 환성을 질렀습니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브루넬레스키의 원근법 발견

이 이상한 실험을 한 사내는 브루넬레스키로, 미술사에서 최초 선원근법의 원리를 발명한 이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른손의 나무 패널에는 그가 선 자리에서 바라본 세례당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물론 자신이 발명한 원근법에 따라 그린 것입니다. 불행히도 이 그림은 오늘날 남아 있지는 않지만,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는 이 그림의 소실점이 있는 곳에 송곳으로 구멍을 뚫어놓았다고 합니다. 거울의 거리를 조절하면서 그 구멍을 통해 들여다보면, 어니 지점에선가 아마 거울 속에 보이는 것과 실제로 시야에 보이는 것이 일치되는 현상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러니까 실물 세례당과 거울에 비친 그림 세례당이 마치 두 개의 퍼즐 조각처럼 서로 딱 들어맞는 것입니다. 이로써 브루넬레스키는 자신의 원근법이 현실을 재현하는 가장 완벽한 방법임을 증명했던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마네티가 쓴 브루넬레스키의 전기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단테가 베아트리체를 만났다는 피렌체의 아르노강. 그 위의 베키오 다리는 지금도 금 세공품을 파는 조그만 가게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당시의 많은 장인들처럼 브루넬레스키도 금 세공사로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피렌체 시에서 저 세례당에 달청동문의 제작을 의뢰했을 때, 브루넬레스키는 기베르티와 경합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우열을 가릴 수 없었던 심사위원들은 두 장인에게 각각 한 짝의 문을 맡겼으나, 브루넬레스키는 공동작업에는 별 관심이 없었는지 이를 기베르티에게 넘겨주고, 자신은 건축으로 관심을 돌렸습니다.

 

저 세례당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산타 마리아 델 피오레 성당. 브루넬레스키는 직경 45미터에 달하는 성당의 거대한 돔을 짓는 일을 떠맡아, 이 기술적 난제를 성공적으로 해결해 냅니다. 오늘날 피렌체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은 아마도 끝없이 이어지는 나선형 계단을 따라 저 높은 쿠폴라에 오른 경험이 있을 것입니다. 이게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그의 자부심은 오늘날에도 광장의 한 귀퉁이에 영원히 자신의 역작을 올려다보도록 조각상으로 굳어있습니다.

원근법의 회화적 전개 – 마사초의 삼위일체

 건축가였던 브루넬레스키에게 왜 원근법이 필요했을까요? 원래 그는 의뢰인들에게 자기가 지을 건물의 모습을 미리 보여줄 목적에서 원근법을 개발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3차원의 공간을 2차원의 평면에 옮겨놓는 것이 회화의 원리, 그는 이 기법을 곧 화가들에게도 권하기 시작합니다. 바사리의 <미술가 열전>에 따르면, 브루넬레스키는 이 기술을 "자신을 매우 존경했던 어린 친구인 화가 마사초에게 가르쳤다."라고 하며, 이로써 미술사에 완벽한 원근법에 입각해 그린 그림이 최초로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그 작품을 보려면 두오모에서 조금 걸어 나와 근처의 산타마리아 노벨라 성당으로 가야 합니다. 마사초가 이 성당의 벽에 프레스코로 그린 <삼위일체>는 미술사에서 브루넬레스키의 기법을 회화에 적용한 최초의 예 알려져 있습니다. 작품의 독특성은 시점의 과격함에 있습니다. 아치의 천장에서 시작된 대각선들을 아래로 계속 연장하면, 십자가의 밑동보다 더 아래쪽에 소실점이 찍히게 됩니다.

삼위일체

마사초는 왜 과격한 투시법을 사용했을까요? 물론 환영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저 그림 앞에서는 관람객의 눈높이가 바로 저 소실점이 있는 지점에 오게 됩니다. 이렇게 소실점을 정화하게 관람자의 눈높이에 맞추어 놓음으로써 마사초는 환영 효과를 극대화한 것입니다. 이 때문에 저 그림은 실제로는 막힌 벽면 위에 그려졌지만, 관찰자는 막힌 벽을 뚫고 깊숙이 공간이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위의 그림은 벽화 앞에서 관찰자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공간의 깊이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무릎을 꿇은 패트론, 십자가 앞에 선 마리아와 요한, 십자가에 달린 그리스도, 그 뒤로 자식을 어루만지는 하나님. 인물들은 전경에서 후경으로 후퇴하며 각각 네 개의 다른 수준에 배치되어 있습니다. 물론 이는 허깨비에 불과합니다. 저 공간의 깊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으니까요. 관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평면뿐, 거기에서 3차원 공간의 깊이를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원근법의 마술입니다.

원근법의 마술과 한계

브루넬레스키가 주장하듯이, 근법적 묘사가 정말로 눈에 비친 세계의 객관적 재현일까요? 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브루넬레스키가 발견하고 알베르티가 이론화한 선원근법은 크게 두가지 의심쩍은 전제 위에 서 있습니다. 첫째는 세계를 오지 고정된 한 눈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시각 피라미드의 횡단면에 걸린 모습을 세계의 재현으로 간주하라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우리의 일상적 체험과는 동떨어진 매우 '인위적인' 조건입니다. 왜일까요?

 

먼저 원근법은 공간의 세 좌표를 동질적인 것으로 간주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같은 크기의 공간이라도 상하, 좌우, 전후의 어느 쪽이냐에 따라 각각 다르게 지각합니다. 또한 원근법은 세계를 고정된 하나의 눈으로 보도록 요구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움직이는 두개의 눈으로 보기 때문에, 우리의 시야는 두 개의 중심을 가진 타원형에 가깝습니다. 또 원근법은 시각 피라미드의 횡단면 위에서 이미지를 포착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세계를 보는 우리 눈의 망막은 구면입니다.

 

이 생리학적 특성에서 비롯되는 이런 문제들 외에 또 다른 주관적 요인이 첨가됩니다. 즉 똑같은 사물이라도 우리는 심리적으로 중요한 것은 크게, 덜 중요한 것은 작게 표상한다는 것입니다. 원근법은 이 심리적 요인 역시 전혀 고려하지 않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원근법적 묘사는 실제로 우리가 지각하는 세계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습니다. 한마디로 '생리학적-심리학적 공간을 곧바로 수학적 공간을 곧바로 수학적 공간으로 변형시키는 것.' 그것이 바로 원근법의 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